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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면 '역사', 너희가 말하면 '왜곡': <암살자들>과 스타벅스 사태가 들춰낸 위선의 카르텔

📌 핵심 쟁점 및 관점 요약

우리가 말하면 '역사', 너희가 말하면 '왜곡': 과 스타벅스 사태가 들춰낸 위선의 카르텔 "우리가 떠드는 것은 창작과 역사이고, 너희가 말하는 것은 처벌해야 할 왜곡이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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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면 '역사', 너희가 말하면 '왜곡': <암살자들>과 스타벅스 사태가 들춰낸 위선의 카르텔


"우리가 떠드는 것은 창작과 역사이고, 너희가 말하는 것은 처벌해야 할 왜곡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두 개의 사건을 나란히 놓아보라.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이 얼마나 깊은 위선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지 그 민낯이 서늘하게 드러난다.


한편에서는 북한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테러리스트 문세광의 총탄에 영부인이 살해당한 비극을 두고,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배후라는 저질 음모론을 영화화한 <암살자들>이 버젓이 극장에 걸렸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의 날조와 고인 모독 앞에서도 문화 권력은 당당하게 합창한다. "창작의 자유다", "영화적 상상력을 억압하지 말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불온 세력으로 몬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스타벅스가 5월 18일 텀블러 행사를 하며 '탱크데이'라는 단어 하나를 썼다는 이유로 온 나라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대기업 총수가 고개 숙여 사죄하고, 대표이사가 전격 경질당하고, 지자체가 나서서 불매를 선언했다. 그것도 모자라 국회에서는 "5·18을 모욕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역사처벌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다.


여기서 아주 단순하고 냉정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대체 어느 쪽이 진짜 악의적인 '억지 선동'이고 날조인가?


스타벅스 사태를 보라. 5월 18일이라는 날짜와 마케팅 단어가 겹쳤을 뿐, 행사를 기획한 실무자가 진짜 5·18을 조롱하려 했다는 '고의적 의도'는 밝혀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의도성조차 확인되지 않은 단순 해프닝이자 부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달려들어 "신성모독"이라며 기업 대표의 목을 치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길길이 날뛴다.


반면 영화 <암살자들>은 어떠한가?


이것이 우연인가? 실수인가? 전혀 아니다.


수십억 원의 자본, 수개월간의 기획, 철저하게 계산된 각본과 연출을 거쳐 정밀하게 제작된 '100% 고의적 결과물'이다. 국가 영부인의 비극적 피격을 정권의 자작극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한 줄 한 줄 치밀하게 설계된 시나리오다.


의도조차 밝혀지지 않은 마케팅 단어 하나에는 인민재판의 멍석을 깔고 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자들이, 명백한 악의로 국가의 역사를 난도질한 영화 앞에서는 "표현의 자유이자 예술"이라며 박수를 치고 있다.


누가 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전속 결재 도장을 쥐어주었는가?


이것은 특정 교원단체나 교육 문제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1차원적 현상이 아니다.


오늘날 40대, 50대, 60대에 걸쳐 정치, 언론, 문화계의 헤게모니를 완벽하게 장악한 주류 세력이 지난 수십 년간 촘촘하게 구축해 놓은 '도덕적 성역화 카르텔'의 합작품이다.


이 세대는 청년 시절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자의식을 얻었다. 문제는 그 자의식이 30년의 세월을 거치며 권력화되고 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영화, 출판, 방송, 대중문화를 독점한 이들은 자신들의 기억과 투쟁만을 '신성불가침의 절대 종교'로 박제했다.


그들이 만든 세계관 안에서 대한민국은 건국과 산업화라는 위대한 기적의 역사가 아니라, 부끄럽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결핍의 역사로 격하되었다. 내 편의 서사는 토씨 하나 비판조차 용납되지 않는 성역이 되었고, 상대편의 성취는 어떤 음모론과 날조를 갖다 붙여도 되는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이 거대한 도덕적 나르시시즘이 40대부터 60대까지 사회 중심부의 뇌리를 단단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신분열적 현실이다.


치밀하게 각본을 짜서 역사를 왜곡한 파렴치한 영화에는 "문화적 포용력"을 운운하며 면죄부를 주는 자들이, 의도조차 없는 기업의 단어 하나에는 피를 흘릴 듯 격분하며 집단 히스테리를 부린다.


내 편이 다루는 역사는 한 편의 음모론 판타지 소설이라도 '거룩한 역사'가 되고, 남이 들이미는 명백한 사실관계는 감옥에 보내야 할 '추악한 왜곡'이 되는 사회. 이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도덕적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전체주의적 폭력이다.


역사는 어떤 진영의 전유물도, 특정 세대의 도덕적 완장도 아니다.


빛과 그림자, 성공과 실패를 냉엄한 사실의 거울 앞에 비추는 것이 성숙한 문명 사회의 기본이다.


"우리가 말하는 건 역사, 너네가 말하는 건 왜곡"이라는 그 오만한 결재권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들의 신화만을 강요하며 반대편을 범죄자로 모는 광기가 계속되는 한, 이 사회에 남을 역사는 오직 한 진영의 날조된 신화와 그 신화를 수호하는 서글픈 검열관들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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