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VIP석에서 혁명을 부르짖는 위선자들: '패션 사회주의'의 역겨운 민낯
자본주의 VIP석에서 혁명을 부르짖는 위선자들: '패션 사회주의'의 역겨운 민낯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결코 에어컨이 돌아가는 쾌적한 책상머리에서 입으로 떠들며 낭만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피와 굶주림으로 뼈저리게 겪어내야만 하는 참혹한 생지옥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기괴하고 역겨운 광경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단 하루도 그 지옥 같은 통제 사회에서 살아본 적 없는 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한 진짜 피해자들 앞에서 "당신들이 겪은 것은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며 건방지게 훈계를 늘어놓는 것이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위선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입으로는 평등과 분배를 부르짖고 위대한 혁명을 찬양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육체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가장 달콤하고 비싼 꼭대기 층에 머물러 있다. 최신형 아이폰의 자판을 두드리며 자본주의 타파를 외치는 이 코미디 같은 현실이 바로 '관중석의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주는 촌극이다.
그렇게 자본주의가 끔찍하고 그들의 체제가 완벽하다면 왜 당장 떠나지 않는가? 선택지는 전 세계에 널려 있다.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머리 위에 완벽하게 통제되는 배급 사회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가서 그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위대한 지상 낙원을 직접 체험해 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가지 못한다. 평생 스스로 땀 흘려 본 적 없는 그 연약한 육체로는 편도 비행기표를 끊을 알량한 용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속으로 누구보다 똑똑히 알고 있다. 그 잘난 이념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벽한 빈곤과 무자비한 통제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세상을 바꿀 신념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걸쳐 입는 안전하고 값비싼 '패션 아이템'에 불과하다.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는 것보다, 자본주의가 안락하게 깔아준 VIP 관중석에 앉아 훈수를 두는 것이 언제나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뱉어내는 그 위선적인 개소리는 멈춰야 한다. 그렇게 그 체제가 좋다면 당장 짐을 싸서 북한으로 넘어가라. 그럴 배짱조차 없다면, 얄팍한 입을 닫고 당신의 안락함을 지탱해 주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뼈저리게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