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나치, 제도적 함정을 이용한 전체주의

우리는 흔히 선거와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가장 완벽한 절차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스마트폰 스크린을 넘기며 느끼는 그 정치적 분노가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라면 어떨까? 과거의 독재가 총칼과 수용소를 앞세웠다면,
현대의 전체주의는 스마트폰 스크린 뒤에서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을 자발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치를 강타한 '민주나치'라는 거친 프레임은 단순한 비방이 아니라,
우리 대의민주주의가 마주한 구조적 위협에 대한 섬뜩한 경고장이다
.
역사는 100년 전의 비극을 증언한다. 1930년대 당대 최고로 민주적이라 칭송받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당은 무장폭동이 아닌 합법적인 선거와 다수결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파괴했다.

이 역사적 데자뷔가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다수결의 물리적 숫자 앞에 견제와 균형, 타협이라는 숙의의 과정은 묵살되고,
소수의 이견은 거대한 함성 속에 철저히 고립된다.

이 현대판 '합법적 독재'의 선봉에는 제복을 입고 횃불 행진을 하던 전위 조직 대신,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거대한 '강성 팬덤'이 있다.
이들은 주류 의견에 반대하는 쓴소리가 나오면 온라인에 좌표를 찍고
수만 건의 문자 폭탄과 조롱성 후원금을 쏟아내며 반대파의 정신을 철저히 파괴한다.

조지 오웰이 경고했듯, 권력은 복잡한 사고를 지우고 자극적인 '신어'를 이식했다.
겉과 속이 다르다며 변절자를 낙인찍는 '수박',
비판적 언론을 향한 '애완견' 같은 멸칭은 대상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합리적 의심을
단숨에 증발시켜 버린다
.
이러한 광기 어린 혐오의 동력화 속에서 정당의 심장인 '대화와 타협'은 완전히 멈춰 섰다.
권리당원 전원 투표제 확립과 같은 변화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화려한 껍데기를 썼지만,
실상은 필수적인 숙의 과정을 생략한 채 알고리즘에 포획된 팬덤의 세 과시로
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포퓰리즘의 함정일 뿐이다.
이는 과거 독재자들이 잦은 국민투표로 압도적 찬성을 이끌어내며 자신의 권력을
합법화했던 방식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분노는 온전히 당신 스스로의 것인가?
혹시 누군가의 권력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어 기획된 증오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적 전체주의와 선동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복잡한 현실을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직시하고 파괴된 대화와 타협이라는 숙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복원하는 것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맹목적인 다수의 환호가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시민들의 치열한 타협 속에서만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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